감성 노트

🎭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었을까” — 『헤다 가블러』를 보고

따뜻한 글쟁이 2025. 7. 7. 05:29

 

📝 연극 『헤다 가블러』를 보고 난 뒤,

나는 꽤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퇴장하지 못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들이 퇴장한 무대는 비어 있었지만,

그 공허한 무대는 오히려 헤다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화려한 사교계의 여왕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질식해버린 여인.

헤다 가블러는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의 일면이자,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마주한 감정의 거울이었다.

 

입센이 1890년에 쓴 이 작품은 시대를 훨씬 앞질렀다.

여성의 자아와 사회적 억압, 결혼 제도 속의 위선과 고립,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단지 '여성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싶으나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헤다는 결혼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지위를 얻었지만,

그 안에는 허망한 공허만이 남았다.

남편 테스만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녀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고,

현실은 그녀가 바랐던 '진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활기찬 삶,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원했지만,

사회는 그녀를 '아내'와 '여성'이라는 틀에 가두었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헤다가 엘르스트레를 조종하려 하며,

그의 원고를 불태우는 장면. 단지 질투나 이기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헤다는 자기가 만들 수 없는 삶을,

자기가 가질 수 없는 창조성을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확인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헤다는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녀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 선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 역시,

통제받지 않는 삶 대신 '스스로 끝맺을 수 있는 죽음'을 택한 것이었다.

얼마나 슬프고도 아이러니한 자유인가.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나도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 '무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러나 그 틀 안에서 나는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모른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감정,

내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우울과 불안,

그것들은 아마도 내 안의 헤다가 울고 있던 신호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헤다를 단지 비극의 인물로만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끝내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여인이었다.

비난받을 선택을 했지만, 그녀의 감정은 분명 진짜였다.

그녀의 슬픔, 공허, 분노, 질투, 갈망, 모든 것은 인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해

가장 비인간적인 결정을 내린다.

 

현대사회에서 『헤다 가블러』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사회가 정해준 틀 안에서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데 급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정된 직장, 평범한 일상,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은 말과 행동.

그러나 그 안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감정들,

마주하지 않은 진짜 욕망은 점점 우리를 무너뜨린다.

 

이 연극은 나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겉으로 멀쩡한 삶이 전부가 아님을,

때론 무너짐과 충동조차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의 일부일 수 있음을.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 마무리하며

 

『헤다 가블러』는 여전히 내 안에서 말을 걸어온다.

너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었냐고. 나는 무엇을 원했으며,

지금은 어디쯤 와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연극 한 편이 인생을 바꾸진 않겠지만,

분명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이제, 나만의 무대에서 내가 쓴 대본대로 살아가고 싶다.

다른 이의 기대가 아닌, 내 안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