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23

🗡️ “칼은 기억한다 — 그 슬픔의 무게를”

📜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특히 그 기억이 칼끝에 닿아 있었다면 더더욱 그렇다.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상처와 책임,그리고 기억이 칼보다 날카로울 수 있음을 말한다. 고려 말, 혼란과 피로 물든 시간 속에한 여인이 있었다. 이름은 설랑.그녀는 정의를 위해 칼을 들었지만,동료이자 이상이었던 율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권력이 정의를 삼키는 그 순간, 그녀는칼을 놓고, 소녀 홍이를 거두어 숨어 살아간다. 칼을 배우며 자란 홍이는 결국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가 다름 아닌 율이라는 사실,그리고 그 복수를 위해 다시 칼을 드는 순간 —그녀는 어쩌면 설랑보다 더 깊은 고통을 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

재미난 상식 2025.07.08

🎭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었을까” — 『헤다 가블러』를 보고

📝 연극 『헤다 가블러』를 보고 난 뒤, 나는 꽤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퇴장하지 못했다. 커튼콜이 끝나고 배우들이 퇴장한 무대는 비어 있었지만, 그 공허한 무대는 오히려 헤다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화려한 사교계의 여왕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질식해버린 여인. 헤다 가블러는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의 일면이자,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마주한 감정의 거울이었다. 입센이 1890년에 쓴 이 작품은 시대를 훨씬 앞질렀다. 여성의 자아와 사회적 억압, 결혼 제도 속의 위선과 고립, 그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단지 '여성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싶으나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이야기..

감성 노트 2025.07.07

🎭 『검은 마법이 깃든 무대

『더 블랙 크룩』이 우리에게 남긴 것』 1. 마법 같은 우연, 역사로 남다 1866년, 미국 뉴욕의 노블리 가든 씨어터.그곳에 세상의 모든 우연이 한 무대 위에서 기적처럼 만났다. 『더 블랙 크룩(The Black Crook)』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오래된 고딕 소설이나 마법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두운 숲, 악마와의 계약,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한 대가 같은 고전적인 설정. 그리고 그것이 연극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뮤지컬’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사실 이 작품은 뮤지컬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온 무용단은 본래 다른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들의 공연장은 화재로 문을 닫았다. 연출자는 고심 끝에 그들을 자..

재미난 상식 2025.07.05

📌 나를 기억해 준 마음, 그리고 이어지는 인연

요즘 마음이 한없이 먹먹하다. 늘 내 손과 발이 되어주셨던 활동보조 선생님께서몸이 편찮으셔서 이번 달까지만 함께하실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처음 만나던 날이 어제 같은데, 선생님은 처음부터 조심스러운 나의 벽을 먼저 허물어주셨고,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몸이 불편한 나에게 누군가가 ‘당연히’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분은 아마 알지 못하실 것이다.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은 늘 함께 울고 웃어주셨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사람.그런 분이 떠난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허전해졌다. 그런 와중에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감성 노트 2025.06.26

청춘을 걷는 미술관 –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강원도 원주의 숲속,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마주친 미술관 하나. 이곳의 이름은 ‘뮤지엄 산(SAN)’. 처음엔 ‘산’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직접 그곳을 걷고 나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자연, 예술, 그리고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설명이 없어도, 이름표가 없어도 작품은 거기 존재했고,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특히 예약이 필수인 제임스 터렐관은 압도적이었다. 어둠 속에서 차오르는 빛의 움직임은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다가왔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분. 나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은 그 어..

감성 노트 2025.06.08

집 근처 황톳길, 맨발로 걷는 힐링의 순간

요즘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문득 멈추고 싶을 때가 있어요.며칠 전, 집 근처 공원에 새로 생긴 황톳길을 걸으면서 그 ‘멈춤’을 잠깐 느껴보았어요. 처음엔 그냥 산책이었는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황톳길 위를 걷자 발바닥에 전해지는 흙의 감촉이 참 신기했어요.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느낌. 구간마다 흙의 질감도 달라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롭더라고요. 요즘 ‘어싱(Earthing)’이란 말이 있대요.전자기기에서 벗어나 맨발로 자연과 직접 연결되는 힐링 습관.그걸 나도 모르게 실천한 거죠. 흙 위를 걷는 동안 생각이 비워지고,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몸도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무엇보다 이런 공간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어요.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먼 여행이..

감성 노트 2025.06.04

여행하듯 살아가기, 그게 정말 가능할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깨달은 삶의 방식 “여행하듯 살고 싶다”는 말 “여행하듯 살고 싶다.”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말을 해봤을 것이다. 바쁜 일상,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문득 떠나고 싶다는 마음.내게도 그랬다. 그러던 중『꾸역꾸역 북클럽』이라는 칼럼을 만났다. 제목은 이렇게 시작된다.“여행하듯 살고 싶은 이에게 필요한 것.” 그 글을 읽고 나서,나는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여행하듯 살아가고 있을까?아니, 나는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매일, 작은 여행을 떠났다사실 내 몸은 멀리 떠나기 쉽지 않다. 여행을 간다는 건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많은 준비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상 속에서작은 여행을 시작했다. 햇살이 유난히 좋은 날엔공원을 천천히 한 바퀴..

감성 노트 2025.05.25

오월의 달력 속, 나의 하루들

오월이 되면 난 달력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빼곡히 적힌 기념일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 숨은 어떤 ‘감정의 주파수’ 때문이라고 할까.며칠 전, 이갑수 작가님의 칼럼 『오월의 달력』을 읽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중용의 도'로 바라본다는 그 말에,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들어 내가 걸어온 오월의 날들을 더듬어 보았다. 꽃이 피고, 마음이 열리는 계절오월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팝나무다. 하얗게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마치 "잘 지내고 있니?" 하고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내가 아팠던 어느 봄날도,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 다녀오던 길가에서이팝나무는 하얀 얼굴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어릴 적엔 몰랐던 그 풍경이,이젠 나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된다. 달력 속 숫자들, 그 너머의..

감성 노트 2025.05.23

낯선 도시에서 울려 퍼진 우리의 이야기, 어쩌면 해피엔딩

낯선 도시의 밤거리,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익숙한 멜로디. 뮤지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 작품은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루며, 우리에게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줘요. 로봇과 인간, 그 사이의 감정*‘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과 로봇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에요. 로봇인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를 알아가며 느끼는 감정은, 마치 우리 인간이 사랑을 시작할 때의 설렘과 닮아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또 얼마나 특별한지를 느끼게 돼요. 브로드웨이에서의 감동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는 것은,한국 창작 뮤지컬의..

감성 노트 2025.05.15

『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를 읽고, 나답게 피어나는 삶에 대하여

**[토토와 나,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 『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를 읽고** 어릴 적, 『창가의 토토』는 내게 유난히 특별한 책이었다.말썽꾸러기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던 토토의 이야기는마치 내 안의 어린 나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창가의 토토, 그 후 이야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나는 단숨에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토토는 여전히 토토였고,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전쟁과 상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번 책은 전쟁 직후,세상이 엉망이 되어버린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토토는폭격을 피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고,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토토는 그 안에서도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가끔은 실수하고, 오해..

책과 나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