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시

이토록 서울

따뜻한 글쟁이 2026. 1. 21. 01:58

 

서울에서는

누군가의 시작이

누군가의 끝을 스쳐 지나간다

 

같은 신호등 아래서

한 사람은 출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돌아갈 곳을 잃는다

 

서울은 늘

겹쳐 있는 도시

 

낮에는

괜찮은 얼굴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밤이 되면

숨겨두었던 마음들이

조금 늦은 걸음으로 돌아온다

 

이 도시의 밤은

낮보다 솔직해서

나는 자주

밤의 서울에 기대어 선다

 

외로움은

이곳에서 특별하지 않다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감정을 품고 살아서

 

혼자라는 말조차

조용히 묻힌다

 

서울은

나를 키웠고

나를 닳게 했다

 

단단해지는 대신

무뎌진 것들이 있고

버텨낸 만큼

내려놓은 마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쉬는 법을

혼자 배웠다

 

아무도 멈추라 말해주지 않아서

내가 나를 멈춰 세웠다

 

커피가 식는 시간

목적 없는 산책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저녁

 

그 작은 쉼들이

나를 다시

서울 속으로 돌려보냈다

 

서울은 늘 묻는다

다음은 무엇이냐고

 

하지만 나는

가끔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을

아직 다 살지 못했기 때문에

 

큰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골목에는 남아 있다

 

오래된 간판

느린 인사

사람의 온기

 

그 덕분에

이 도시는 아직

사람의 도시라고

믿게 된다

 

실패는

이곳에서 빠르게 잊힌다

아파할 틈도 없이

다음 하루가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잊히기 전에

나를 한 번 더 안아준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울은

집 같으면서도

여전히 낯선 곳

 

떠나고 싶어질 때마다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

 

이 도시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웃고

울고

버티며 살아온

나의 시간이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토록 서울인 하루를

조용히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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