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 영화 왕과 춤추는 남자를 보고 쓰는 편지

따뜻한 글쟁이 2026. 2. 12. 01:47

 

엄마에게,

 

엄마,

오늘 나는 영화를 한 편 보다가

자꾸만 엄마를 떠올렸어.

왕도 나오고, 화려한 무대도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장면 뒤에

엄마가 조용히 서 있는 것 같았어.

 

영화 속에는

왕의 곁에서 춤을 추는 한 남자가 나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

박수가 쏟아지는 자리에서

그는 누구보다 빛나 보여.

그런데 엄마,

나는 그 빛보다

박수가 멎은 뒤의 그의 얼굴이 더 오래 남았어.

 

그 표정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괜히 마음이 아팠어.

 

엄마는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지.

잘했을 때보다

힘들어할 때 더 오래 바라봐 주던 사람.

괜찮냐는 말보다

손을 먼저 내밀던 사람.

 

어릴 때

밤에 머리가 아파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있었잖아.

그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주었지.

그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해.

 

그 손은

“잘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고

“남들처럼 해야 해”라고 재촉하지도 않았어.

그저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어.

 

영화 속 왕의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 아니었어.

인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더 깊이 묶어 두는 손이었지.

그 손 아래에서

예술은 화려해졌지만

사람은 점점 숨 쉬기 어려워졌어.

 

그걸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어.

엄마는

내가 빛나지 않아도

나를 놓아주던 사람이었으니까.

 

엄마,

나는 요즘 글을 써.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고,

가끔은 나 자신도

이 글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불러.

그리고 그 손을 떠올려.

내 머리 위에 얹혀 있던

그 말 없는 위로.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내 글을 어떻게 보셨을까.

아마도

잘 썼다고 크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그 대신

“오늘은 좀 쉬어”

“힘들면 그만해도 돼”

그런 말을 먼저 했을 것 같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엄마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공연도,

좋은 풍경도,

이렇게 조심조심 써 내려간 문장들도.

 

영화 속 남자는

끝내 왕의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해.

박수 속에서 시작한 춤이

고독 속에서 끝나.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말했어.

 

“엄마, 이 사람은 너무 혼자야.”

 

엄마,

나는 아직도 완벽하게 살지 못해.

자주 흔들리고,

자주 멈춰 서고,

가끔은 내가 잘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아직도

엄마가 남겨준 리듬으로 살고 있다는 걸.

누군가의 시선을 향한 춤이 아니라

엄마가 허락해준 속도로

조금 느리게,

조금 서툴게.

 

엄마는 내 글을 보지 못했고

내 춤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엄마의 손을 기억하며 살아.

 

그것이면

아직은 괜찮다고,

오늘도 버텨도 된다고

엄마가 말해주는 것 같아서.

 

엄마,

보고 싶어.

그리고

여전히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