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문을 열던 날, 우리는 무엇을 외면했는가”
우연히 마주친 뉴스 하나가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한밤중, 조용한 골목 어귀에 서 있는 한 여인.
그녀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이름도 없었다.
그녀의 품에서 마지막 체온을 느끼던 아이는,
곧 ‘베이비박스’라는 철제 문 너머로 옮겨졌다.
‘더는 키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더는 살아낼 수 없어서’
그녀는 그렇게 아이를 놓고 돌아섰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이별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이런 현실을 ‘안타까움’이라는
말로 무디게 감싸곤 하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 그 문 하나에 응축돼 있다.
🔹 왜 베이비박스가 필요한 사회인가
그녀는 미혼모일 수도 있고, 가정폭력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때로는 외국인 노동자,
10대 소녀, 혹은 보호받지 못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녀를 위한 문이 없었기에,
결국 ‘아이를 위한 마지막 문’ 하나만이 열려 있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살리는 안전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만들어낸 벼랑 끝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녀가 택한 선택이 ‘버림’이 아니라 ‘살림’이 되기 위해,
우리가 그 다음 문들을 함께 열어야 하지 않을까.
🔹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누구를 위한 시선인가
“왜 낳았어?”
“책임도 못 지면서…”
우리는 쉽게 말한다. 너무 쉽게.
하지만 그녀들이 정말 원하는 건 비난도, 동정도 아닌
‘존중’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다.
출산과 양육을 혼자 감당하게 만드는 구조,
아동수당은커녕 병원조차 혼자 찾기 힘든 현실,
고립된 채 ‘숨는 법’을 배우게 되는 엄마들.
그렇다면 이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부재 아닐까.
🔹 베이비박스 그 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가 아이를 놓은 그날,
그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베이비박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보호가 아닌 회복과 동행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녀가 아기를 두고 나서 눈을 떴을 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는 사회가 있다면,
그녀도 언젠가는 아이를 다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문 앞에서 마음을 내려놓은 엄마들이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이였고,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자라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문을 연 건 그녀였지만,
그 문을 만든 건 우리였다는 사실도.
‘숨을 곳’이 아니라 ‘기댈 곳’을 먼저 만들어주는 사회,
그것이 베이비박스가 사라져야 할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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