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상식

📌 “색으로 피어난 이야기: 정양팔채, 삶의 무대 위에 핀 예술”

따뜻한 글쟁이 2025. 7. 9. 11:26

 

📝 중국 쓰촨성 산골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 예술, 정양팔채(呈样八彩).

이 낯선 이름 속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오롯이 녹아 있다.

우리는 종종 예술을 도시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지만,

정양팔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팔채’란 이름 그대로 여덟 가지 색을 의미하지만,

그 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붉음은 기쁨이고, 푸름은 슬픔이며,

노랑은 축복이고, 검정은 상실이다.

색은 말이 되고, 말은 노래가 되며,

노래는 무용이 되어 삶의 굽이굽이를 꿰어 나간다.

 

 내가 그 마을에 도착했던 날,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산을 돌고 계곡을 따라 굽이진 길을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곧 마을 전체가 하나의 합창단이 되었다.

아이도, 어른도, 할머니도…

모두가 환영의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그 노래는 단지 인사말이 아니었다.

마치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화려하지도, 훈련되지도 않았지만 그 노래 안에는

이방인을 품는 따뜻한 온기와,

사람을 향한 순수한 환대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공연장 객석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 속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정양팔채의 무대는 특별한 극장이 아니다.

마을의 광장, 절 앞 마당,

장터 한켠—어디든 삶이 있는 곳이면 된다.

관객은 동네 사람들, 배우는 이웃 어르신이나 아이들이다.

때로는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손주가 무대에서 재연하고,

젊은 이는 사랑을 고백하듯 춤사위를 펼친다.

예술은 그렇게 세대를 넘어 흐르고,

이야기의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건 그 속에 담긴 서사성과 공동체성이다.

정양팔채는 단지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다.

이웃의 아픔을, 마을의 역사와 기원을,

조상의 숨결을 함께 나누는 의례이자

추모, 축제이자 교육의 장이다.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산 자에게 웃음을 안기며,

후손에게 지혜를 건네준다.

 

나는 이 낯선 전통 예술 속에서 우리의 옛 굿’이나

‘탈놀이’, ‘농악’을 떠올렸다.

형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삶을 담은 예술, 예술이 된 삶.

그래서 정양팔채는 단순한 무대 공연이 아니라

삶의 진심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였다.

 

문화가 점점 산업화되고, 예술이 상품으로 포장되는 요즘,

정양팔채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시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만 예술이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순수한 예술은,

진심 어린 나눔과 기억, 그리고 색으로 피어난 삶의

단편들 속에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정양팔채는 중국 오지의 문화유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국경을 넘는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작은 무대들,

이야기꾼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들어야 할 때다.

 

📎 마무리 멘트

누군가 나를 향해 노래를 불러준 기억.

그것 하나로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정양팔채는 말하고 있다.

“삶은 공연이고, 당신은 환영받아야 할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