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텅이에 빠지기 전에” — 교황의 목소리가 던지는 평화의 의미
"우리는 지금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2025년 6월, 교황 레오는 한 문장으로 전 세계를 멈춰 세웠다.
이 말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의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가자 지구를 둘러싼 첨예한
군사적 충돌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자,
인류의 양심에 던진 외침이었다.
▣ 성직자의 언어가 세계정치에 파문을 일으킬 때
종교는 때로 현실 정치와 무관한 듯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현재도, 종교는 사회와
정치에 깊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특히 교황의 메시지는 단순한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세 이후 오랫동안 세계의 도덕적 방향타 역할을 해온
교황청의 목소리는 전쟁, 난민, 빈곤, 환경 등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 속에서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정밀 폭격하고, 이란은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자 지구에서의 전투를 넘어 전면전을 각오한 태세다.
국제사회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군사 충돌의 도미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때, 교황은 물었다.
“과연 우리가 향하는 길은 되돌릴 수 있는가?”
그 한 문장은 전쟁을 둘러싼 명분, 이해관계,
전략적 판단이라는 복잡한 계산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수천 년간 이어진 피의 역사 속에서 정말 우리는 여전히
총과 폭탄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가?
▣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는 상징이 아니다
교황은 이번 강론에서 단지 군사‘ 충돌에 대한 우려만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회복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기 전에,
인간은 스스로의 양심을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이는 단지 군사적 결과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다.
현대의 전쟁은 한순간의 오판으로 전 세계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핵시설 폭격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이미 한반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그리고 냉전 시기 수없이 들어온 단어의 공포를 떠올린다.
이제는 ‘구렁텅이’가 비유가 아닌 현실의 문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할 때다.
중동이라는 지역은 종교, 민족, 역사, 자원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장소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세계를 뒤흔드는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는 지정학적 화약고다.
교황의 메시지는 그 불씨를 애써 외면하는 강대국들에게,
그리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국제사회에게 “무관심은
더 이상 선택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
▣ 평화란 무엇인가 — 외교의 가치
교황은 평화와 외교의 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그는 유엔이나 각국 정상에게 군사적 해결책이 아닌 ‘외교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한때 유럽의 외교는 펜 하나로 대륙의 국경선을 그렸고, 말 한마디로 전쟁을 끝냈다.
지금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이 군사력보다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중동 사태는 외교 실패의 결과이자, 국제사회의 ‘관심 피로’에서 비롯되었다.
끊임없는 테러와 반격, 보복과 응징이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외교는 점점 구호로만 남게 되었다.
바로 그 점에서 교황의 목소리는 묵직하다.
"우리가 외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무력을 신봉하는 사회가 된다."
외교는 언제나 느리고 복잡하며, 이해득실의 타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쟁보다 낫다. 외교는 죽음을 미루는 수단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황의 말은 강한 외침이 된다.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 종교와 정치 사이, 도덕의 균형점
물론 일부는 비판한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논리,
또는 교황의 발언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황의 메시지는 정치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성과 정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며, 침묵의 윤리를 거부하는 행위다.
역사적으로도 교황청은 홀로코스트, 이라크 전쟁, 기후 위기,
난민 문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때로는 정치권력보다 앞서서, 때로는 국민보다 먼저 울었다.
그 울림은 정치적 의사결정을 도덕의 무게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해왔다.
교황의 이번 강론 역시 그러하다. 그는 정치와 종교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인간의 보편 가치를 주장했다. "무력보다 말이 먼저여야 한다",
이 단순한 말이 이제는 가장 절실해졌다.
▣ 평화를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지금 세계는 무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가자는 불타고 있으며, 이란과 이스라엘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노인들이, 이름 없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
전쟁의 명분 아래에서 사람은 숫자로만 취급된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바로, 정치인이 아닌 사람, 이익을 따지지 않는 자,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 그리고 양심의 언어로 말하는 존재,
교황 같은 이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말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은 희망이 아니라,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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