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나의 아몬드

따뜻한 글쟁이 2026. 1. 4. 07:31

 

감정을 배워가는 사람으로서

 

1.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작 내가 느껴온 감정들은 너무 과했구나 생각했다.

 

슬픔도, 불안도, 죄책감도 늘 넘치게 안고 살았다.

그래서 감정이 없다는 말이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을수록 알게 되었다.

 

느끼지 못하는 삶은 편안함이 아니라,

더 깊은 고독이라는 것을.

감정은 짐이 아니라, 연결의 증거라는 것을.

 

2.

주인공의 엄마를 보며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냈다.

누군가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애써주던 순간들.

 

그때 나는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정답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이 소설은 조용히 말해준다.

사랑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라,

세상을 건널 수 있게 손전등을 쥐여주는 일이라고.

 

3.

웃는 연습을 했다는 문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멈췄다.

 

나 역시 괜찮아 보이기 위해 연습한 표정들이 있었다.

괜찮다는 말, 문제없다는 말, 익숙한 미소.

 

그건 거짓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운 감정보다 안전한 반응을 배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낯설지 않았다.

 

4.

할머니라는 존재는 늘 그렇듯, 설명이 없다.

그저 내 편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사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버텨온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는

“그래도 너는 괜찮아”라는 무언의 동의다.

『아몬드』는 그 침묵의 힘을 알고 있다.

 

5.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뉴스 속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숨겼던 순간들도 함께.

 

다름은 언제나 설명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설명은 늘 피곤하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폭력은 생긴다.

모르기 때문에, 묻지 않기 때문에.

 

6.

곤이라는 인물은 불편했다.

하지만 불편함 속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나쁜 아이이기 전에, 방치된 아이였다.

 

나 역시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상처를 상처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적이 있다.

 

『아몬드』는 선악을 쉽게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진짜 같다.

 

7.

주인공이 처음으로 화를 느끼는 장면에서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 이 아이도 드디어 살아 있구나.

분노는 미성숙함이 아니라 반응이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

아프게 느끼는 편이 아직 희망이 있다.

감정은 상처이면서 동시에 신호다.

 

8.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배워가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넘어지고, 후회하고, 혼자 울면서 익혔다.

그래서 아직도 서툴다.

 

하지만 배운다는 건, 계속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9.

이 소설은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있었다.

 

상처는 쉽게 낫지 않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그 ‘조금’이 삶을 버티게 한다.

나도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10.

『아몬드』를 읽고 나서

나는 내 감정을 다시 보게 되었다.

 

너무 많아서 숨이 찼던 감정들,

애써 눌러왔던 마음들.

 

이제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변화다.

 

 

 

 

'감성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을 배워가며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  (4) 2026.01.05
할 수 있는 만큼, 잇몸에게 건네는 마음  (0) 2026.01.04
자존에 대하여  (0) 2026.01.02
선의는 태도가 된다  (0) 2026.01.01
2026년의 문턱에서  (0) 202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