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TV는 바보상자였다
생각을 멈추게 하는 네모난 상자라고
어른들은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마음을 접어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네모난 화면 앞에
다시 서 있는 지금
나는 알게 된다
TV는
바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화면 속에서
역사는 이야기로 흘러나오고
이름만 외우던 연도 대신
사람의 선택과 삶이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온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무대 위에 서기까지의 시간
웃음 뒤에 숨겨진 연습과 실패
화면 밖에서 흘렸을
수많은 밤들
이제는
겉모습보다
그 시간을 먼저 본다
그래서 나는
TV를 보다가
가끔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태해지려는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가 놓인다
“아직 괜찮다”
“조금 더 살아도 된다”
드라마 속 한 줄의 대사가
내 하루를 붙잡고
등장인물의 망설임이
내 삶과 겹쳐질 때
아,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변화가
나이 듦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시간을 받아들이겠다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조금 늦게 배운 대신
바보상자라 불리던 화면 앞에서
나는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조금씩
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짧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할 수 있는 만큼 (0) | 2026.01.04 |
|---|---|
| 그래도, 사람 (0) | 2026.01.01 |
| 천천히 나에게 (0) | 2025.12.29 |
| 〈최애 무죄〉 (0) | 2025.12.28 |
| 연말, 지하상가에서 (0) | 2025.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