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시

바보상자라 불리던 화면 앞에서

따뜻한 글쟁이 2025. 12. 29. 22:28

 

어렸을 때

TV는 바보상자였다

 

생각을 멈추게 하는 네모난 상자라고

어른들은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보고 싶은 마음을 접어 두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네모난 화면 앞에

다시 서 있는 지금

나는 알게 된다

 

TV는

바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화면 속에서

역사는 이야기로 흘러나오고

이름만 외우던 연도 대신

사람의 선택과 삶이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온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무대 위에 서기까지의 시간

웃음 뒤에 숨겨진 연습과 실패

 

화면 밖에서 흘렸을

수많은 밤들

 

이제는

겉모습보다

그 시간을 먼저 본다

 

그래서 나는

TV를 보다가

가끔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태해지려는 마음에

작은 불씨 하나가 놓인다

 

“아직 괜찮다”

“조금 더 살아도 된다”

 

드라마 속 한 줄의 대사가

내 하루를 붙잡고

등장인물의 망설임이

내 삶과 겹쳐질 때

 

아,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변화가

나이 듦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시간을 받아들이겠다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조금 늦게 배운 대신

바보상자라 불리던 화면 앞에서

 

나는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조금씩

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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