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동지, 한 해를 내려놓는 연습

따뜻한 글쟁이 2025. 12. 22. 16:13

 

동지는 밤이 가장 길다.

낮은 짧고, 해는 서둘러 사라진다.

 

달력의 끝자락에 와 있는 이 시기와 잘 어울리는 날이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멈춰 서게 된다.

 

달려오던 속도를 늦추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동지는 그런 연말의 마음을 가장 닮은 날이다.

 

한 해 동안의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어떤 날은 하루가 금세 지나갔고,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뎠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잘해낸 일보다 부족했던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고,

애쓴 순간보다 아쉬운 말들이 오래 남았다.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나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동지에 먹는 팥죽은 그런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팥죽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안녕을 빌고,

탈 없기를 바라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보다도,

“올해도 무사히 지나왔다”는 확인에 가깝다.

 

큰 사고 없이, 큰 포기 없이,

그저 오늘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지는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밝아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낮은 조금씩 길어진다.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분명하다.

 

연말의 마음도 그렇다.

아직 새해의 설렘은 멀리 있지만,

한 해를 정리하고 내려놓는 순간

이미 다음을 향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나는 오늘, 올해의 나에게 박한 평가

대신 짧은 문장을 건네기로 했다.

 

“잘 버텼다.” 완벽하지 않았고,

늘 옳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동지는 그런 나에게 허락된 잠시의 쉼 같다.

더 잘하라는 말 대신,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신호처럼.

 

연말은 늘 무언가를 더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하지만,

동지는 그 마음에 균형을 잡아준다.

 

끝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임을,

멈춤이 곧 퇴보는 아님을 조용히 알려준다.

 

가장 긴 밤을 지나야 다시 해가 길어지듯,

한 해의 끝을 지나야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

 

동지는 그렇게 말없이 가르쳐준다.

정리하는 법, 내려놓는 법,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