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밤이 가장 길다.
낮은 짧고, 해는 서둘러 사라진다.
달력의 끝자락에 와 있는 이 시기와 잘 어울리는 날이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멈춰 서게 된다.
달려오던 속도를 늦추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동지는 그런 연말의 마음을 가장 닮은 날이다.
한 해 동안의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어떤 날은 하루가 금세 지나갔고,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뎠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잘해낸 일보다 부족했던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고,
애쓴 순간보다 아쉬운 말들이 오래 남았다.
연말이 되면 늘 그렇듯,
나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동지에 먹는 팥죽은 그런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팥죽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안녕을 빌고,
탈 없기를 바라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보다도,
“올해도 무사히 지나왔다”는 확인에 가깝다.
큰 사고 없이, 큰 포기 없이,
그저 오늘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지는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동시에 다시 밝아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낮은 조금씩 길어진다.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분명하다.
연말의 마음도 그렇다.
아직 새해의 설렘은 멀리 있지만,
한 해를 정리하고 내려놓는 순간
이미 다음을 향한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나는 오늘, 올해의 나에게 박한 평가
대신 짧은 문장을 건네기로 했다.
“잘 버텼다.” 완벽하지 않았고,
늘 옳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동지는 그런 나에게 허락된 잠시의 쉼 같다.
더 잘하라는 말 대신,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 신호처럼.
연말은 늘 무언가를 더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하지만,
동지는 그 마음에 균형을 잡아준다.
끝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임을,
멈춤이 곧 퇴보는 아님을 조용히 알려준다.
가장 긴 밤을 지나야 다시 해가 길어지듯,
한 해의 끝을 지나야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
동지는 그렇게 말없이 가르쳐준다.
정리하는 법, 내려놓는 법,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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