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바닥에서 시작된 춤, 그러나 시선은 언제나 위를 향해 있었다

따뜻한 글쟁이 2025. 12. 18. 11:33

 

— 휠체어 댄서 채수민의 이야기

 

누군가는 춤을 “일어서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두 발로 바닥을 밀고, 몸을 띄우고,

 

공간을 가르며 움직이는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춤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걷는 몸’을 상상한다.

 

하지만 채수민의 춤은,

그 고정관념을 아주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부순다.

그의 무대는 바닥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휠체어 위에서, 손과 팔, 상체와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움직임.

바퀴가 회전하는 리듬, 몸을 기울이는 각도,

멈춤과 다시 나아감. 그 모든 것이 춤이 된다.

 

아니, 오히려 춤의 본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춤은 결국, 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채수민은 ‘할 수 없는 몸’으로 불리지 않기를 원한다.

대신 그는 말한다.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에요.”

 

그 말에는 체념도, 변명도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진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매일

다시 써 내려가는 사람의 태도만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장애를 이야기할 때

‘극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붙인다.

 

하지만 그의 춤을 보고 있으면,

극복이라는 말보다 ‘공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휠체어를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휠체어와 함께 움직인다.

 

몸을 부정하지 않고, 몸과 대화한다.

그래서 그의 춤은 처연하지 않다.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고, 단단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무대 위의 채수민은 ‘불편한 시선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그냥, 춤추는 사람이다.

 

관객은 어느 순간 휠체어를 잊고,

움직임만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좁은 기준으로

‘정상적인 몸’과 ‘아름다운 움직임’을 정의해왔다는 사실을.

 

그의 춤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어떤 몸만 춤출 수 있다고 믿어왔나요?

당신은 왜 어떤 움직임만 예술이라고 생각했나요?

 

채수민은 말 대신 몸으로 답한다.

춤은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선언하는 것이라고.

 

이 이야기가 더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었을 순간, 남들과 다른 시선이 버거웠을 순간,

자신의 몸이 미워졌을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그는 춤을 놓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춤이 그를 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삶이 자꾸만 “그만해도 돼”라고 말할 때,

그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몸으로 대답했다.

 

그 대답이 바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춤이다.

채수민의 이야기는 장애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꿈을 말하기 위한 이야기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휠체어를 끌고 살아간다.

보이지 않을 뿐, 저마다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앞에 채수민의 춤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멈추지 않기를.”

그래서 그의 무대는 끝나도 여운이 남는다.

 

춤이 끝난 자리에,

용기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