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을 사랑하라.”
어쩌면 이 문장은 버닝맨의 모든 정신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철학일지도 모른다.
버닝맨은 사막 한가운데 생겨났다가,
일주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도시다.
그곳에선 고정된 것이 없다.
자아도, 질서도, 물질도 일시적이다.
그러나 그 덧없음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가장 생생한 ‘삶의 태도’를 배운다.
버닝맨이 말하는 첫 번째 삶의 태도는 자기 표현의 용기다.
누구나 이곳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나무를 깎아 하늘 높이 조형물을 세우고,
어떤 이는 자신의 아픔을 시로 적어 모래 위에 뿌린다.
예술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예술이 된다.
중요한 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타인의 시선에 갇힌 무대지만,
버닝맨에서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낯선 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용기.
그것은 어쩌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선언이다.
두 번째 태도는 공동체적 삶의 연습이다.
버닝맨 도시에는 돈이 없다. 대신 사람들은 주고받는다.
무언가를 나누는 행위는 이기심의 반대가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 된다.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 자전거를 고쳐주는 것, 쉴 곳을 내어주는 것.
그 모든 것이 단순한 행동을 넘어, 삶의 윤리로 작동한다.
공동체는 규칙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신뢰와 환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곳에서 배운다.
세 번째 태도는 집착하지 않는 삶이다.
버닝맨의 작품은 대부분이 마지막에 불에 타 사라진다.
수백 시간, 수천만 원을 들인 조형물이 말 그대로 '재'가 된다.
그러나 누구도 그 소멸을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꽃 앞에서 사람들은 환호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마치 선불교의 공(空) 사상처럼,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 삶의 본질이 있다.
네 번째 태도는 경계 없는 연결감이다.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사회적 지위도 이곳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한 줌의 모래처럼 모든 것이 평등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연결된다.
춤추는 순간, 불꽃을 바라보는 그 눈빛 속에
언어 이상의 공감이 흐른다.
세상이 잊은 ‘연결의 본질’을 이곳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회복시켜준다.
버닝맨은 말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마지막으로 버닝맨은 삶을 '실험'하라고 가르친다.
정답 없는 공간에서 살아본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의 삶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내가 입는 옷은 나다운가?”
“나는 무엇을 창조하며 살아가는가?”
“소유보다 중요한 것이 뭘까?”
이러한 질문이 쌓일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한다.
버닝맨은 현실의 탈출구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현실을 상상하고,
그 현실을 살아갈 용기를 키워주는 사막 속의 불꽃 학교다.
이 일주일의 경험은 영원히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몸에 새긴 삶의 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불꽃은 꺼져도, 나의 존재는 더 환히 타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버닝맨 이후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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