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나를 먼저 규정했다.
장애인이라는 말이 세상의 시선보다
먼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설명하고 변명했다.
“나는 이만큼밖에 못 해.”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야.”
그 말들은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화감독 백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오래 멈춰 섰다.
그의 말 한 문장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했다.”
이 문장은 고백이었고, 동시에 질문이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영화 속 한 장면.
카페 키오스크 앞에 선 휠체어, 닿지 않는 화면, 잠시 멈춘 손.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벽이 된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는
‘불편함’을 강조하지 않아서였다.
불쌍함도, 극복도, 감동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아, 이건 장애를 말하는 장면이 아니라
삶을 말하는 장면이구나”라고 느꼈다.
우리는 종종 장애를 이야기할 때
‘이겨냈다’, ‘극복했다’는 말부터 꺼낸다.
하지만 백진 감독의 고백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장애보다 더 힘든 것은
스스로에게 씌운 한계의 이름이었다고.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시간,
미리 포기해 버린 선택들,
남들보다 늦을까 봐 아예 시작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아프지만 정직한 깨달음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했고,
세상은 내가 상상한 것만큼 차갑지 않았는데
정작 나만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건 내가 하기엔 무리야.”
“이건 다른 사람 몫이야.”
그 말들은 보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백진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느꼈다는 두려움,
카메라를 들 수 있을지,
현장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내가 새로운 일을 앞두고 느끼는 떨림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 섰고,
그 선택 하나가 그의 삶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장애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장애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단어를 가장 크게, 가장 먼저 불러온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 보고 싶다.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한 사람인 동시에 무언가를 꿈꾸는 존재라고.
내 삶은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면 되는 이야기라고.
백진 감독의 고백은
누군가를 위한 용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풀어주는 용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나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제는 너를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돼.”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했다" 영화감독 백진이의 솔직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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