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줄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불렀다

따뜻한 글쟁이 2026. 1. 3. 00:12

 

나는 오랫동안 나를 먼저 규정했다.

장애인이라는 말이 세상의 시선보다

먼저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설명하고 변명했다.

“나는 이만큼밖에 못 해.”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야.”

 

그 말들은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화감독 백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오래 멈춰 섰다.

 

그의 말 한 문장이 내 안에서 계속 울렸다.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했다.”

 

이 문장은 고백이었고, 동시에 질문이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영화 속 한 장면.

카페 키오스크 앞에 선 휠체어, 닿지 않는 화면, 잠시 멈춘 손.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벽이 된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는

‘불편함’을 강조하지 않아서였다.

 

불쌍함도, 극복도, 감동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아, 이건 장애를 말하는 장면이 아니라

삶을 말하는 장면이구나”라고 느꼈다.

 

우리는 종종 장애를 이야기할 때

‘이겨냈다’, ‘극복했다’는 말부터 꺼낸다.

 

하지만 백진 감독의 고백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장애보다 더 힘든 것은

스스로에게 씌운 한계의 이름이었다고.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시간,

미리 포기해 버린 선택들,

남들보다 늦을까 봐 아예 시작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아프지만 정직한 깨달음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했고,

세상은 내가 상상한 것만큼 차갑지 않았는데

정작 나만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건 내가 하기엔 무리야.”

“이건 다른 사람 몫이야.”

그 말들은 보호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백진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느꼈다는 두려움,

카메라를 들 수 있을지,

현장을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내가 새로운 일을 앞두고 느끼는 떨림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 섰고,

그 선택 하나가 그의 삶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장애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꿔야 한다’는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장애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그 단어를 가장 크게, 가장 먼저 불러온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 보고 싶다.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한 사람인 동시에 무언가를 꿈꾸는 존재라고.

 

내 삶은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면 되는 이야기라고.

 

백진 감독의 고백은

누군가를 위한 용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풀어주는 용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나에게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제는 너를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돼.”

 

 

"나만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했다" 영화감독 백진이의 솔직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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