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줄

나는 요즘, 다산처럼 책을 읽고 싶어졌다

따뜻한 글쟁이 2025. 12. 22. 18:30

 

예전의 나는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로 나를 평가하곤 했다.

한 달에 몇 권, 올해는 몇 권.

읽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남은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책장을 덮으면 마음이 급해졌고,

다음 책으로 서둘러 넘어갔다.

 

그러다 문득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을 읽게 되었다.

그는 책을 빨리 읽지 않았고,

많이 읽는 것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렀고,

이해되지 않으면 멈추었다.

 

그 태도가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는 언제부터 책 앞에서 멈추지 않게 되었을까.

 

다산은 읽을 때 반드시 기록했다고 한다.

문장을 옮겨 적고,

그 문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 기록은 지식을 쌓기 위한 메모가 아니라

‘내가 이 문장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남기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나도 다시 노트를 펼쳤다.

줄을 긋는 대신, 손으로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생각보다 속도가 느려졌고, 그만큼 마음은 차분해졌다.

책이 더 이상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다산은 한 권의 책에 머무르지 않았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나란히 놓고 읽으며

어떤 말이 현실에 닿아 있는지,

어떤 말이 책 속에만 머무르는지를 따졌다.

 

나는 그동안 책을 너무

쉽게 믿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유명하면 고개를 끄덕였고,

어렵게 쓰여 있으면 더 옳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산의 독서는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이 말은 너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말문이 막혔다.

무엇보다 나를 붙잡은 것은

다산이 독서를 삶으로 연결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읽은 것을 글로만 남기지 않았다.

행정과 제도, 백성의 삶 속에서

그 사유가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했다.

 

책을 덮고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요즘 나는 책을 덮은 뒤 잠시 멈춘다.

이 문장이 나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나의 말투와 판단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묻는다.

 

아직은 서툴고 자주 놓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책을 ‘넘기기’만 하지는 않는다.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은

나에게 더 많이 읽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더 깊이 생각하라고,

그리고 그 생각을 삶으로 옮기라고 말한다.

 

나는 아직 다산처럼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려 애쓰는 사람으로 책 앞에 앉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내 독서는 조금 달라졌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