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TV는 ‘바보상자’였다.
어른들은 TV를 오래 보면 생각이 멈춘다며,
가능하면 멀리 두려 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TV는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이 되었다.
요즘 TV를 켜면 교육적인 콘텐츠가 참 많다.
특히 학창 시절 가장 어렵고 멀게 느껴졌던 역사가
이제는 강의와 이야기로,
사람의 삶과 선택을 따라가며 천천히 다가온다.
그때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나는 역사를 덜 두려워했을까,
조금은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을까
괜히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게 된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겉모습만 보고
‘저 사람은 원래 잘났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화면 너머를 상상하게 된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실패와 연습,
보이지 않는 시간과 포기하지 않은 마음들.
그 치열함을 알게 된 후로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태해지려는 마음에 작은 불씨를 던져준다.
‘나도 아직 더 노력할 수 있겠구나.’
‘오늘을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도 되겠구나.’
TV 속 이야기들이
내 삶의 리모컨을 조용히 눌러준다.
드라마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흘려보냈던 대사 한마디가
이제는 마음에 오래 남는다.
등장인물의 선택 앞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겹쳐 보인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을 조금씩 빌려온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변화가
나이 듦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을 견디며 얻은 여유일까.
빠르게 판단하기보다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 지금,
나는 예전보다 덜 조급하고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바보상자라 불리던 화면 앞에서
나는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이해하고,
조금씩 나 자신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시청각 수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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