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선이 당연해졌지만,
줄이어폰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느려진다.
〈러브 트랙: 02 – 첫사랑은 줄이어폰〉은
사랑이 아직 자유롭기보다는
서툴게 얽히고, 자주 닿고,
쉽게 끊어지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줄이어폰은 혼자만의 물건이 아니었다.
한쪽은 내 귀에, 한쪽은 누군가의 귀에.
노래는 같았지만,
심장은 각자의 속도로 뛰고 있었다.
첫사랑도 그랬다.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었지만
마음의 박자는 늘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이어폰 줄이 자주 꼬이듯
마음도 자주 엉켰다.
괜히 말 한마디에 신경이 쓰이고,
침묵이 길어지면 음악보다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래도 줄을 풀기보다는
그 어색함마저 함께 견디는 것이
그 시절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 드라마가 좋았던 건
첫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렘만큼이나 불편했고,
가까운 만큼 숨이 막히기도 했다는 사실을
줄이어폰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물건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이기보다는
자주 불편하고, 자주 망설이는 일이었음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줄이어폰은 결국 끊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한쪽만 들리거나,
소리가 멀어지거나,
조심스럽게 감싸 쥐던 줄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첫사랑도 대부분 그렇게 끝난다.
크게 싸우지 않아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자의 귀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노래는 오래 남는다.
다른 이어폰으로 들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어느 순간 문득
줄이어폰을 나눠 끼던 장면이 떠오른다.
첫사랑은 그렇게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러브 트랙: 02 – 첫사랑은 줄이어폰〉을 보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첫사랑이란
완벽해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불편했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는 걸.
귀에 닿던 그 온기,
줄이 스칠 때의 미묘한 거리,
그 모든 어색함이
지금의 나를 만든 한 부분이라는 걸.
아마 우리는
다시 줄이어폰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의 마음만큼은
가끔 꺼내 들어도 괜찮을 것이다.
조금 꼬여 있어도,
한쪽만 들려도
그때만의 진심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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