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만화를 자주 읽지 않는다.
책장 한편에 만화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펼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좋아하던 것들을 ‘바쁘다’는 말로 밀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화박물관에 들어선 날,
나는 아주 오래된 나를 다시 만났다.
공부보다 만화책이 더 좋았던 아이,
문제집보다 말풍선이 더 친절하다고 느꼈던 아이,
친구들과 성적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누가 어떤 장면을 봤는지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만화를 정말 좋아했다.
공부를 싫어했다기보다
공부보다 만화가 더 솔직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만화 속 인물들은 틀려도 혼나지 않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으며,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현실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던 감정들이
만화 속에서는 늘 살아 있었다.
만화박물관에는 그런 감정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다.
화려한 캐릭터, 유명한 작품들 사이에서
나는 문득 ‘이건 전시가 아니라 기억의 복도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컷, 한 장면마다
누군가의 어린 날이 숨어 있었고,
그 시절을 통과해 온 어른들이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어릴 때의 나는 만화를 읽으며 많은 걸 배웠다.
정답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것,
착한 사람만 이기는 건 아니라는 것,
그래도 끝까지 살아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학교에서는 잘 가르쳐주지 않던 것들을
만화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요즘의 나는 예전만큼 만화를 읽지 않는다.
눈이 피로해졌고,
집중력이 짧아졌고,
‘지금 해야 할 일’이 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박물관을 걷다 보니
읽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화는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힘들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불완전한 나를 조금은 용서하는 태도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컷과 컷 사이의 여백을 보며
나는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말하지 못한 마음,
정리되지 않은 감정,
그대로 두고 지나온 시간들.
만화는 언제나 그 여백을 남겨두었다.
독자가 채우라고,
각자의 삶으로 건너오라고.
어쩌면 나는
만화를 덜 읽게 된 게 아니라
만화처럼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음 장으로 넘어가며,
실수해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삶을.
만화박물관을 나서며
나는 다시 만화를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다.
‘좋아했던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공부보다 만화책을 좋아했던 나도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니까.
만화는 어린이의 것이 아니라
어린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만화박물관은
그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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