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경계의 삶을 살아가는 용기

따뜻한 글쟁이 2025. 12. 8. 23:50

 

사람들은 종종 나를 두 번 바라본다.

한 번은 전동 스쿠터 때문에,

또 한 번은 내가 바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그들의 눈빛에는 궁금함과 판단,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무언가가 동시에 담겨 있다.

 

마치 그 순간,

나를 그저 “특별 관리가 필요한 사람”으로 분류해 버리는 것처럼.

나는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비교적 쉽게 인정받는다.

서류가 있고, 의학적 기록이 있고, 눈에도 보인다.

 

하지만 내 안에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한 번에 흡수되지 않는 정보,

설명은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이해는 조금 뒤에야 찾아오는 느림.

그것을 사람들은 ‘노력 부족’이라고 불러왔다.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는 “장애인”이면서 “정상 범주” 안에

들어가길 바라는 사회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몸은 장애인으로, 머리는 평균인으로,

감정은 사람들 사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나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지만,

학습과 이해가 느리다는 이유로 도움을 요구하면

“그건 스스로 해야지”라는 시선을 맞는다.

 

이중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나에게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쏟아지는 말과 정보 속에서 당연한 듯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앞 문장을 소화하고 있을 때,

대화는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있다.

 

나는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인데.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세상은 늘 속도가 기준이었다.

 

느린 사람은 낙오자였고,

이해가 늦어 질문이 많으면 귀찮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몸이 불편한 나는 “열심히 해서 극복해야 하는 사람”으로,

이해 속도가 느린 나는 “부족한데 티를 내면 안 되는 사람”으로.

그 사이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못했다.

 

장애인은 배려받아야 한다는 말과

장애인도 똑같이 해내야 한다는 말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끌어당긴다.

 

어떤 날은 너무 배려받아서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너무 평가받아서 무너진다.

 

실패할 때마다 내 잘못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믿었다.

 

“내가 더 빨랐으면, 내가 더 잘했으면, 남들처럼만 했으면….”

이 생각들은 꼬리처럼 달라붙어 나를 괴롭혔다.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단지 노력보다 다른 종류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말한다.

“장애가 있어도 지능은 괜찮으니까 다행이지.”

 

그 말은 마치,

나는 몸이 불편한 정도만 허용되는 장애인이어야 하고

머릿속 어려움은 티 내지 말고 감춰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기 시작했다.

모르면 웃어넘기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도움이 필요해도 “혼자 해볼게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살아가려 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느리다는 사실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나는 느리고, 그래서 더 노력한다.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되묻고,

한 번 더 해보는 삶을 살았다.

 

그 과정 속에서 상처도 많았지만,

그만큼 포기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세상은 말한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 불쌍한 건 아니야.”

 

“요즘은 다 지원해주잖아.”

하지만 말해지고 있는 장애는 대부분 눈에 보이는 영역이다.

 

지원의 기준, 제도의 기준, 평가의 기준들은

보이는 부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것이 나 같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몸이 불편해서 장애인이지만,

정신적 지원은 받을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해도

“그 정도는 노력으로 가능해”라고 돌아온다.

 

세상이 모두를 평균으로 맞추려 하기 때문에

평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쉽게 배제된다.

 

하지만 삶은 평균으로 측정되는 시험이 아니다.

각자의 몸, 각자의 뇌,

각자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여행이다.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조금 더 천천히 말해주는 것.

질문을 두 번 한다고 짜증을 내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았다면 다시 설명해주는 것.

그 정도의 여유와 배려면 세상은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속도가 느린 사람을 끌어당겨 끼워 맞추는 세상이 아니라,

속도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줄 줄 아는 세상.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함께 걷기 위한 용기라는 걸 인정하는 세상.

 

나는 여전히 경계선에 서 있다.

장애와 평균 사이, 느림과 요구 사이, 도움과 자립 사이.

 

하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경계에 선다는 건 흔들리며 버텨왔다는 증거이고,

그 순간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 속도가 나를 만든다.

느림은 실패가 아니라 나만의 리듬이다.

 

그리고 나처럼 경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조금 느리게 가고 있을 뿐,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