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예전보다 자주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병원에 가기를 망설였다.
그 모습은 몇 년 전, 끝내 치료의 시간을 놓친 채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일까. 언니의 말 한마디,
숨결 하나에도 나는 이유 없이 마음이 조여들었다.
혹시나, 혹시 그 길을 또다시 겪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조용히 가슴 속을 적셨다.
우리 자매는 조금은 특별하다.
나는 1남 2녀 중 둘째이고,
언니와는 17살이라는 큰 나이 차이가 있다.
부모님이 마켓을 운영하시며 생계를 꾸려가던 시절,
언니는 자신의 학창시절 속에 나와 동생을 품어 넣고 살았다.
폐렴으로 고열을 앓던 어린 시절,
언니는 아침과 저녁마다 자전거에 나를 태워 병원을 오갔다.
그 와중에도 6년 개근상을 받을 만큼 성실했고,
어디를 가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억을 쌓아주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언니는 누군가가 아닌, 하나의 세계였다.
그러다 언니가 결혼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형부와 함께 집에 찾아왔지만,
어려서 알 수 없던 마음은 그저 ‘언니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형부가 미웠다. 어리고 서툴렀기에 가능했던 감정.
지금은 그때의 나를 따뜻하게 토닥여 줄 수 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언니는 더욱 깊고 조심스럽게 나를 보듬었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의지의 순서’를.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슬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의 행동은 어느 순간부터 조심스러운 책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여름,
언니는 마침내 병원으로 향했다.
큰 병원에서 받은 결과는 암.
그러나 언니는 무너지는 대신 담담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처럼. 무너진 건 차라리 나였다.
아니기를, 오진이기를, 다른 답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적은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언니는 포기 대신 ‘하루 더 건강해지는 선택’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조카는 식단을 관리하며 곁에서 정성을 다한다.
언니 주위에는 기도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언니는 반드시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예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고 단단하게.
그리고 나는 언제나 언니의 편에서,
언니의 작은 숨결까지 기억하며 응원할 것이다.
“언니, 당신은 나의 살아 있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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