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요양원에 계신 아빠가
다른 병원에 진료가 있어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진료를 받고
가족들과 점심도 함께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참 귀하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고,
같이 밥을 먹고,
한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예전에는 너무 당연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나니
쉽게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빠를 오랜만에 뵈었는데
지난번에 조금 편찮으셨던 탓인지
얼굴이 전보다 많이 야위어 보였다.
한참 아빠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마음속에서 겹쳐졌다.
시간은 사람의 얼굴에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것 같다.
아빠도 나이를 드셨고
나도 어느새 아빠의 젊은 시절보다
아빠의 지금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의 기억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치매라는 것이
사람의 기억을 하나씩 데려가는 병이라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조금씩 알게 된다.
어제의 일이 흐려지고
조금 전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어떤 사람의 이름도
어느 순간부터 낯설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이상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는 3남매 중에서
내 이름만은 꼭 기억해주신다.
내가 아빠의 아픈 손가락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이
조금 더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아빠가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
마음 한쪽이 조용히 따뜻해진다.
많은 것을 잊어가고 있는 아빠에게
내 이름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작은 기억 하나에
괜히 마음이 매달리는 것 같아
애틋하기도 하다.
언젠가는 그 이름마저
아빠의 기억에서 흐려질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잠시 멈추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아빠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이 시간이
그저 고맙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기 전
석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때가 있었다.
그때 언니와 동생은 엄마 곁에 있었고
나는 아빠와 함께 있었다.
아빠가 그 무렵 나무에서 떨어지시는 바람에
몸이 불편해지셨고
혼자 집에 계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빠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시간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아빠와 함께 밥을 먹고
아빠를 챙겨드리고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시간들이 하나씩 마음속에서 살아난다.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
아빠의 목소리.
집 안의 익숙한 풍경.
그때의 평범했던 하루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고 나서야
그 평범함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나는 가끔
그때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기억이 흐려지는 아빠에게
내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아빠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면
묻고 싶다.
“아빠, 나 기억나?”
그러면 아빠는 아마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이름을 불러주실 것이다.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치매를 앓고 계신 아빠는
요즘 말씀이 많지 않으시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조용히 계실 때가 많다.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야
그때서야 짧게 대답하신다.
예전처럼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시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길게 하시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있을 때면
가끔 궁금해진다.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눈앞에 자식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우리를 알아보고 계실까.
예전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리고 계실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실까.
아니면 그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걸까.
알 수가 없다.
아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없으니
나는 그저 아빠의 표정과 눈빛을 바라볼 뿐이다.
흔히 치매에도 여러 모습이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 아빠를 보면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치매’에 가까운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말로 아빠의 병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내가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은
조용하고 말수가 적으며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보다
그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모습에 가깝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일 때도 있다.
아빠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니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혹시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아빠는 예전에도
본인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셨다.
무언가를 드려도
자식들에게 먼저 챙겨주시고,
자식들이 잘 지내는지를 묻고,
본인의 힘든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어딘가에는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좋았던 기억을 더 오래 붙잡고 싶어 하니까.
아빠를 다시 요양원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잘 모시고 있는 것인지.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뭔가를 더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그런 생각들이 차 안에서
하나둘씩 떠오른다.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아빠를 두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참 다른 것 같다.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
마음 한쪽에는 늘 미안함이 남는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빠도 집에 가고 싶으실까.
예전에 살던 집을 기억하고 계실까.
늘 지내던 방과
익숙했던 가구들,
매일 오가던 길과
집 앞의 풍경을 기억하고 계실까.
아빠에게 ‘집’이라는 곳은
아직도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혹시 마음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참 먹먹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에게 집이라는 것이
꼭 예전의 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익숙한 목소리 하나,
손을 잡아주는 사람 하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하나가
아빠에게는 작은 집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와 자식의 역할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한때는 아빠가 내 손을 잡아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아빠의 손을 잡는다.
한때는 아빠가 나를 걱정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아빠의 안부를 걱정한다.
한때는 내가 아빠에게
“아빠, 이것 좀 해줘.”
하고 부탁했다면
이제는 내가 아빠에게
“아빠, 괜찮아?”
하고 묻게 된다.
그런 역할의 변화가
가끔은 서글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준 또 하나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돌봄이라는 이름의 사랑.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큰 것을 바라지 않게 된다.
아빠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아빠가 조금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많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찾아갔을 때
가끔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마울 것 같다.
오늘도 아빠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고
점심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하루가 되었다.
아빠가 조금 야위어 보였던 얼굴도,
조용히 앉아 계시던 모습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셨던 순간도,
그리고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시던 뒷모습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두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싶어진다.
아빠가 잊어가는 시간까지
내가 대신 기억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아빠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아빠를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나를 잊어도
나는 아빠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에게는 흐릿해지는 시간이
나에게는 선명하게 남아 있도록.
엄마가 병원에 계셨던 그 시절
아빠와 함께했던 시간도,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했던 기억도,
오늘 함께 먹었던 점심 한 끼도,
그리고 내가 아빠의 손을 잡았던
수많은 순간들도.
천천히,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 생각을 했다.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가 아빠에게
얼마나 좋은 딸이었을까.
아마 완벽하게 좋은 딸은 아니었을 것이다.
찾아뵙지 못한 날도 있었고
내 삶에 바빠 아빠를 잊고 지낸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미안함에 너무 오래 머물기보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을
아빠와 함께하고 싶다.
한 번 더 찾아뵙고,
한 번 더 손을 잡고,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드리고,
한 번 더 함께 밥을 먹는 것.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일들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빠.
오늘 나랑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내 이름을 기억해줘서 고맙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내 앞에 있어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갈게.
그때도 내가
“아빠, 나 왔어.”
하고 말하면
아빠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이름을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내게는 참 오래 남을 것 같다.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지만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아빠가 잊어가는 시간은
내가 기억해둘게.
그리고 지금처럼
아빠의 곁에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날들을
소중하게 간직할게.
오늘도 그렇게
아빠와 함께한 하루가 지나간다.
평범해서 더 소중했던 하루.
아빠의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함께 밥을 먹었던 하루.
나는 오늘도
그 하루 하나를 마음속에 조용히 담아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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