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노트

백설기 위에 내려앉은 새로운 계절

따뜻한 글쟁이 2026. 9. 10. 18:02

 

하얀 떡을 보면 마음이 조금 말랑해진다.

 

백설기라는 이름 때문일까.

새하얀 빛깔 때문일까.

 

어릴 적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상 위에 놓여 있던 떡.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했던 음식이었고,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의 곁에 있던 백설기가 어느 날 조금 낯선 모습으로 돌아왔다.

 

피자를 만난 것이다.

 

하얀 백설기 위에 붉은 토마토소스가 올라가고,

그 위로 치즈와 토핑이 얹힌다.

우리가 알고 있던 떡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낯선 떡을 만나기 위해 긴 줄을 선다.

 

두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먹어보고 싶은 마음.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면 기꺼이 기다린다.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 끝에 작은 설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맛일까.’

 

‘정말 피자 맛이 날까.’

 

‘떡과 치즈가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아직 입에 넣어보지도 않은 음식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수많은 상상을 피워낸다.

 

어쩌면 사람들은 피자설기를 먹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에 찾아온 작은 새로움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비슷한 아침을 맞고, 비슷한 길을 걷고,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맛 하나는 생각보다 특별하다.

 

익숙한 백설기와 낯선 피자의 만남.

 

그 둘 사이에는 어쩌면 우리의 시간이 겹쳐 있다.

 

옛날의 떡과 오늘의 디저트.

 

할머니가 기억하는 음식과 젊은 세대가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음식.

 

전통이라는 오래된 시간과 유행이라는 빠른 시간이 한 조각의 떡 위에서 만난다.

 

나는 그 모습이 싫지 않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 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꽃도 계절마다 피는 모습이 다르고, 사람도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달라진다.

변한다고 해서 본래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설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얗고 담백했던 떡 위에 새로운 맛이 더해졌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떡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피자설기는 단순히 ‘특이한 음식’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작은 떡에서 오래된 것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본다.

 

고집스럽게 옛 모습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좋아하는 맛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음식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변해도 괜찮아.’

 

‘새로운 것을 만나도 괜찮아.’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네가 아닌 것은 아니야.’

 

생각해 보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만난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낯설었던 길이 어느 순간 가장 좋아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가지가 만나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백설기와 피자처럼.

 

그러니 새로운 만남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익숙한 것 위에 새로운 것을 하나 올려보는 것.

 

어쩌면 삶이 조금 더 다채로워지는 방법은 그렇게 소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긴 줄 끝에서 피자설기 한 조각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을 것이다.

 

두 시간이라는 기다림 끝에 손에 들어온 작은 떡.

 

그 안에는 치즈의 고소함도 있고, 떡의 담백함도 있고,

무엇보다 ‘기다린 끝에 만난 즐거움’이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작은 기다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낯설어도 괜찮고,

 

가끔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 만나도 괜찮다고.

 

하얀 백설기 위에 새로운 맛이 내려앉듯,

우리의 평범한 하루에도 뜻밖의 설렘 하나가 내려앉기를.

 

그리고 그 작은 설렘 하나로

오늘이라는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백설기 위에 피자가 올라간 날처럼,

우리의 삶에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맛이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