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줄

「괴물의 얼굴, 인간의 집 ― 홍콩 익청빌딩을 걷다」

따뜻한 글쟁이 2025. 9. 3. 01:33

 

괴물의 얼굴, 인간의 체온

 

홍콩 익청빌딩이 던지는 질문

 

홍콩 퀘리 베이의 좁은 길목을 따라 들어서면

거대한 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수십 년 전 지어진 아파트들이 서로 맞물리며 마치

한 덩어리의 거대한 건축물처럼 솟아 있다.

 

현지인들은 그저 “집”이라 부르지만,

여행자와 사진가들에게 이곳은 익청빌딩,

혹은 ‘몬스터 빌딩(Monster Building)’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고밀도의 산물, 시대의 기록

 

이 건물은 단일 건축이 아니다.

푸크청, 몬테인, 오션익, 익청, 익팟 등 다섯 동이

촘촘히 붙어 형성된 거대한 군집체다.

 

1950~60년대, 중국 본토에서 몰려든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홍콩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효율과 밀도를 앞세운 결과,

18층 남짓한 건물 다섯 채에 수천 세대가 거주하며,

최대 1만 명 가까운 인구가 이 안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익청빌딩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홍콩 현대사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생활사 박물관 같은 존재다.

 

그곳을 바라보면,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 보인다.

 

‘괴물’이라는 오해와 매혹

 

외부인의 시선에서 이곳은 압도적이다.

안쪽 중정에서 올려다보면 네모난 창문과 발코니가 끝없이 겹쳐져,

마치 도시에 삼켜질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몬스터 빌딩’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그것은 괴물이 아니라 삶의 그릇이다.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고, 아이들이 복도에서 놀며,

불빛이 켜지고 꺼지는 일상이 이 ‘괴물’의 표정을 바꿔 놓는다.

 

스크린 위의 도시 풍경

 

익청빌딩은 영화와 광고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나 ‘공각기동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곳을 미래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으로 사용했다.

 

건물의 독특한 구조와 비주얼이 세계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풍경은 조금 다르다.

 

차갑고 비인간적인 배경이 아니라,

수천 명의 일상이 겹쳐져 만들어내는 생활의 풍경이다.

 

관광지와 생활지의 경계

 

오늘날 익청빌딩은 인스타그램 핫플로 자리 잡았다.

관광객들은 중정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며

“괴물의 입 속에 들어온 듯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곳이 누군가의 집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일부 구역에서 촬영 제한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익청빌딩은 소비해야 할 배경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생활의 공간이다.

 

도시가 던지는 질문

 

익청빌딩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도시 속 밀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홍콩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도쿄, 뉴욕처럼 압축적 성장을 겪은 도시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문제다.

 

익청빌딩을 ‘괴물’이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도시의

압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집,

나름의 공동체다.

 

괴물 같은 외관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체온,

그것이 바로 익청빌딩이 가진 매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