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생학교

시간을 거슬러 정의를 묻다

따뜻한 글쟁이 2026. 2. 19. 23:51

 

— 판사 이한영이 남긴 질문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끝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판사 이한영’이 그랬다.

마지막 장면이 흐른 뒤에도 화면은 꺼졌지만,

질문은 꺼지지 않았다.

 

정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의롭게 살아왔을까.

 

이한영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빛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타협했고, 계산했고, 때로는 침묵했다.

법복을 입고 있었지만 법보다 현실을 먼저 봤던 사람이었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서,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 같았다.

우리는 늘 옳은 선택만 하며 살지 못한다.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때로는 그냥 피곤해서 옳음을 미룬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르게 살 텐데.”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한영의 회귀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의 무게를 다시 들게 하는 형벌이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시험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미래를 아는 사람은 변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알았다.

어떤 판결이 누군가의 인생을 무너뜨렸는지.

어떤 침묵이 누군가를 절망으로 밀어 넣었는지.

어떤 타협이 진실을 묻어버렸는지.

 

그래서 두 번째 삶의 그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법정 장면은 단순한 재판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간의 양심이 서는 자리였다.

판결문을 읽는 목소리는 법률 문장이

아니라 삶의 선언처럼 들렸다.

 

그가 내리는 판결 하나하나에는

이전 삶의 후회가 묻어 있었고,

그 후회는 곧 용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특별했던 이유는

정의를 거창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의는 멀리 있지 않았다.

거대한 악을 쓰러뜨리는 영웅담도 아니었다.

대신 아주 작은 순간 속에 숨어 있었다.

 

침묵하지 않는 것.

외면하지 않는 것.

알면서도 모른 척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한영이 다시 배운 정의였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회귀가 필요할까?

 

아마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꼭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용기일 테니까.

 

어제의 실수를 오늘 바로잡는 것,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회귀니까.

 

이한영은 과거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오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의 변화는 픽션이지만, 그 질문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편한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침묵과 말함 사이에서, 타협과 진실 사이에서.

 

그리고 그때마다 어쩌면 마음속에서 누군가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선택,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한영이라는 인물은 결국 우리에게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판결권을 돌려주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우리가 판단하라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법정극이 아니라

자기 삶의 재판장이 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마음이 계속 흔들린다면,

그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 우리 차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