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감정이 없는 아이에게서 배운 것들

따뜻한 글쟁이 2026. 1. 3. 08:33

 

— 『아몬드』를 읽고

 

『아몬드』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이렇게 오래 마음속에 머물 줄은 몰랐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의 성장기라는 설명은 차분했고,

어쩌면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책은 나에게 점점 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네 감정을 얼마나 들여다보며 살고 있니?”라고.

 

윤재는 공포도, 분노도, 기쁨도 선명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의 뇌 속 ‘아몬드’,

편도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감정이 아니라

이해와 학습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의 얼굴 표정을 외우고,

상황에 맞는 반응을 메모하듯 익힌다.

 

울어야 할 장면에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웃음이 필요한 순간에도 머뭇거리는 윤재의 모습은 처음엔 낯설다.

 

하지만 곧 그 낯섦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느끼지 않으려 애써왔던 순간들이 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가 복잡해질까 봐,

혹은 괜히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마음속에서 분명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나는 그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미뤘다.

 

윤재가 감정을 ‘배워야 했던’ 아이였다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접어두는 법을 배운 어른이었던 셈이다.

 

이 책에서 윤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느리지만 성실하다.

 

그는 완벽하지 않지만, 회피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아도 관찰하고, 알 수 없어도 곁에 머문다.

 

그 태도는 읽는 내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너무 쉽게 멀리하고,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포기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곤이라는 인물은 이 소설의 감정을 가장 날것으로 드러낸다.

폭력적이고 거칠며 분노로 가득 찬 아이.

 

처음엔 두렵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의 분노가 사실은

외면당한 감정의 형태라는 걸 알게 된다.

 

윤재와 곤이는 정반대에 서 있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두 사람을 이어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와 감정에 압도당한 아이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관계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곤이를 읽으며 나는 과거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말이 날카롭고, 감정 표현이 거칠었던 사람들.

 

그때의 나는 그들의 상처까지 이해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몬드』를 읽고 나서야,

 

그들의 분노가 어쩌면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렇게,

이미 지나간 기억들까지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몬드』는 공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용히 질문하는 소설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윤재를 통해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모든 감정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의 곁에 남아 있으려는 선택을 한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달라진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나 자신의 ‘아몬드’를 생각했다.

혹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너무 단단하게 굳어버린 건 아닐까.

 

우리는 무뎌지는 것을 성숙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감정을 느끼는 건 불안정한 일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아몬드』는 요란하지 않다.

대신 낮은 목소리로 오래 말을 건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듯하다.

“지금 네 마음은 어떤 상태니?

그 감정을 외면하지는 않았니?”

 

이 책을 읽고 나는 조금 느리게 살아보기로 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잠시라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윤재가 세상과 연결되기까지의 시간이 그랬듯,

나 역시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아몬드』는 나에게 감정을 가르친 책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허락해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