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자존가들

따뜻한 글쟁이 2025. 12. 29. 16:26

 

자존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나는 한동안 자존감이라는 단어 앞에서 작아졌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마치 나라는 사람 전체를

부정하는 판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 웃고, 일을 하고, 사람들과 무리 없이 어울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못 믿을까?”

『자존감들』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뒤집는 책이었다.

자존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말.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수많은

장면들이 하나씩 설명되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의 나는 꽤 단단하다.

책임을 다하고, 약속을 지키고, 결과로 나를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관계 앞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고,

괜히 나를 낮추며 분위기를 맞추려 한다.

 

나는 이 모순을 두고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왔다.

 

그러나 『자존감들』은 말한다.

그건 자존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황마다 다른 자존감이 작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늘 당당한 상태’로 오해한다.

하지만 책은 자존감을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자존감이란 스스로를 무조건 믿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서야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실수하면 스스로를 질책했고,

비교 속에서 늘 나를 뒤처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타인에게는 쉽게 건네던 이해와 관용을

정작 나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자존감들』은 묻는다.

“당신은 당신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나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 게 아니라,

나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살아왔던 건 아닐까.

 

자존감은 언제나 높을 필요가 없다고 책은 말한다.

오늘은 흔들려도 괜찮고,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약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그 상태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자존감을 키워야지”라고 다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해본다.

“지금의 나도 충분하다.”

“오늘의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의 여러 자존감들을

조금씩 숨 쉬게 한다.

 

자존감은 완성형이 아니다.

하나의 점수도, 고정된 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다시 세워지는

수많은 나를 존중하는 연습의 기록이다.

 

『자존감들』을 덮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자존감을 배우는 중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덜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