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바빠.”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인사처럼 반복되었다.
바쁘다는 말 속에는 성실함도, 책임감도 담겨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잦아질수록 삶은 점점 가벼워졌다.
하루는 빠르게 흘러가는데, 그 안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다시 펼쳤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모모』 속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시작한 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
대화는 짧아지고, 여유는 사치가 된다.
회색 신사들은 친절한 얼굴로 말한다.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미래를 위해 저축하라고.
그 말은 너무도 합리적이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을 저축할수록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진다.
아이들은 혼자 놀고,
어른들은 서로를 대할 여유를 잃는다.
아껴 둔 시간은 분명 늘어났는데, 삶은 오히려 텅 비어간다.
모모는 특별한 능력이 없다.
빠르게 말하지도, 똑똑한 해결책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모 앞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마음을 되찾는다.
스스로도 몰랐던 슬픔과 기쁨을 말로 꺼내며
다시 살아 있는 얼굴이 된다.
모모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온전히 함께 머무는 일.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을 비효율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현실의 회색 신사들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성과표, 일정표, 알림 소리 속에서
우리는 늘 더 빨리, 더 많이를 요구받는다.
대화는 메시지로 줄어들고, 침묵은 불안이 된다.
쉬는 시간마저 생산성을 따지며 관리한다.
그렇게 하루를 촘촘히 채우지만,
막상 무엇을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선뜻 떠오르는 장면은 많지 않다.
시간을 관리했지만, 시간을 살지는 못한 하루들이다.
『모모』에서 호라 박사는 말한다.
시간은 저장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만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와 나눈 대화,
아무 목적 없이 바라본 하늘,
천천히 걸었던 길 위의 감정들이 바로 시간이 된다.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 간 것은 분과 초가 아니라,
그런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하루를 조금 다르게 보내기로 했다.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괜찮다는 말을 쉽게 건네지 않으며,
잠시 멈춰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했다.
여전히 바쁜 하루였지만, 그날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안에 ‘살아낸 시간’이 조금 더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모』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시간을 아끼고 있는가, 아니면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저축하려 할수록 삶은 메말라진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느려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충만한 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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