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볼 때가 있다.
같은 문장을 읽고 있는데도
그때와 지금의 마음은 참 다르다.
아마 책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바라보는 내가 조금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다시 펼쳐든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도 그랬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저 애벌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애벌레들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내가 보였고,
우리의 삶이 보였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서로를 밀치고 밟으며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왜 올라가는지
어디에 도착하려는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모두가 올라가고 있으니
나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
우리도 때때로 그러니까.
남들이 가는 길을 보며
나도 그 길을 가야 할 것 같고,
누군가 앞서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뒤처지지 않아야 할 것 같고,
남보다 조금 더 많이 가져야 하고
조금 더 잘해야 하고
조금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올라가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원했던 곳일까.
아니면 모두가 바라보는 곳이라서
나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는 수많은 ‘꼭대기’가 생긴다.
성공이라는 꼭대기,
돈이라는 꼭대기,
명예와 인정이라는 꼭대기.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할 것 같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비로소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의 꼭대기에 가까워지면
또 다른 꼭대기가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올라간다.
쉬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살피면서.
어쩌면 가장 지치는 순간은
힘들게 올라가는 순간보다
내가 왜 올라가고 있는지 모르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내가 걸어온 길은
정말 내가 선택한 길이었을까.
물론 아직도 답을 알지는 못한다.
살다 보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작아지기도 한다.
때로는 남들보다 늦은 것 같아
조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계절이 다르고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르다는 것을.
누군가는 봄에 피고
누군가는 여름에 피며
어떤 꽃은 긴 겨울을 지나
가을이 되어서야 자신의 색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늦게 피는 꽃에게
왜 늦었느냐고 물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의 계절을 보며
내 계절을 판단한다.
누군가의 봄을 보면서
나는 왜 아직 겨울일까 생각하고,
누군가의 꽃을 보면서
내 꽃은 왜 피지 않는지 걱정한다.
하지만 꽃은
다른 꽃과 경쟁하지 않는다.
해바라기가 장미가 되려고 하지 않고
들꽃이 화려한 꽃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어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남들과 같은 꽃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어떤 꽃인지 알아가는 시간.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나 자신에게 맞는 삶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답을 알려준다면
차라리 쉬울 텐데.
하지만 삶에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게 좋은 삶이
나에게도 좋은 삶이라는 보장은 없고,
누군가에게 행복한 길이
나에게는 조금 힘든 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남들이 가는 방향에서 잠시 벗어나
내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편안하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때
조금 더 나다운가?’
그 질문에
당장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을 것이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우리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고 있을 테니까.
『꽃들에게 희망을』을 다시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잠시 멈춰 서는 것.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은 어쩌면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가장 나다운 길이 될 수도 있고,
잠시 멈춘 시간이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금 늦어도 괜찮다.
남들보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니까.
나는 요즘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잘 산다는 것은
꼭 많은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웃을 수 있었고,
어떤 날은 견딜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그저 하루를 지나왔을 수도 있다.
그 모든 날이
나의 삶이다.
꽃도 피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겉으로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덜 비교하며 살아가고 싶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길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서.
빨리 피려고 애쓰기보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씨앗을
조용히 돌보고 싶다.
아직 꽃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내가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나 자신도 잘 모르지만 괜찮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완성된 나를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하는 나를
조금씩 만나가는 과정일 테니까.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이
오늘따라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꽃들에게 희망을.
그 말은 어쩌면
아직 피지 않은 모든 존재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너에게도 너만의 계절이 있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땅속에서는 이미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고.
그러니 서두르지 말라고.
남의 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너에게도 언젠가
너만의 꽃이 피어날 거라고.
나에게도
아직 피지 않은 꽃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화려할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들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꼭 크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내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견뎌온 날들과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그런 꽃이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그 꽃이 피었을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먼저 바라보며 말해주고 싶다.
“참 오래 기다렸구나.
그래도 결국 너답게 피어났구나.”
오늘도 나는
아직 피지 않은 나의 꽃을 생각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아직 길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꽃은 서로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으니까.
나에게도
나만의 계절이 올 것이다.
그날까지
조용히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지금의 나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
아직 피지 않은 꽃에게도
이미 봄은 시작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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